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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yle 3월호 천우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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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가녀린 체구의 천우희가 붉은빛이 도는 보라색 머리를 흩날리며 걸어왔다

오늘은 하루 온종일 웃을 것만 같은 그녀의 표정에 스태프는 긴장을 조금 늦출 수 있었다

촬영해야 할 분량이 보통 때보다 많고, 겨울 날씨의 변수 탓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하루였다

매니지먼트에서는 추위에 몹시 약한 배우를 위해 여러 대의 미니 난로와 핫팩을 준비해왔다


그런데 천우희를 위한 날이었을까

겨울 내내 기승을 부리던,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람마저도 잠잠했다

그녀의 말처럼 겨울 촬영 현장에서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표정이나 "빨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다행이다

놀이동산에 오게 된 것은 천우희의 말 때문이었다. 매우 오래전에 다녀오고는 통 갈 일이 없었다고

"그러고 보니 10년 전이네요.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 <허브> 촬영차 왔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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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와 함께 스타 영상을 제작하는 '인스타일 스타 필름'을 준비하면서 천우희는 작가들이 자주 언급한 인물이다

창작자에게 천우희라는 배우가 매력적인 것 만은 틀림없다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한 후 차근차근 쌓아 올린 연기자로서의 입지는 여전히 파릇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예견해볼 만한 것이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 등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배우가 아니라는 점도 한몫한다

그래서 쉽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해온 천우희가 실제 어떤 사람인지 알 기회는 드물다.

 

영화 <곡성> 이후 배우 김남길과 출연한 <어느날> 개봉일이 생각보다 늦어졌고

그나마 팬들과 소통하는 소셜 계정도 요즘 업로드가 뜸했다.


그녀는 "추워서 집에 있다 보니 전할 소식이 없어요"라며 배시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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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의 스타 필름을 진행한 사진작가 하시시박은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영상과 사진에 담고 싶어 했다

무겁고 진지한 영화 속 캐릭터에서 벗어나 현재 서른 두 살 천우희의 모습을 말이다


멀리서 사뿐사뿐 뛰듯이 걸어오던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것도 영화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 이미지의 영향을 받아서겠다

붉은빛이 도는 헤어 역시 의외라고 느낀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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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의 이미지 작업에 사진작가 하시시박이 떠오른 것은 그녀의 인스타그램 때문이다

말간 얼굴, 장난기 가득한 표정

어느 영화에서 이런 얼굴을 봤는지 생각해봐도 잘 떠오르지 않는데

그간 맡은 캐릭터는 본래 천우희의 모습에 몇 겹을 씌워놓은 듯하다


그녀를 칭찬하는 선배들은 연기가 훌륭해서만이 아니라, 그런 연기를 하는 천우희가 대견해서일 것이다

올해 만으로 서른인 배우에게 '인스타일 스타 필름'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남겨주고 싶었고

그런 생각과 동시에 사진작가 하시시박이 떠올랐다


대학에서 필름을 전공한 작가는 사진과 스토리텔링이 전부 가능하다

특히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감성이 지금의 천우희를 표현하기에 적합할 것 같았다

작가는 "천우희라는 배우를 꼭 한번 촬영해보고 싶었어요제가 봤을 때 그녀는 무척 사랑스러운 여자인데

그런 성향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요"라고 작업 방향을 전하면서 가상의 소개팅 상황을 제안했다

소개팅 상대가 바라본 천우희의 모습을 담고 싶다고 말이다


이를 위해 사랑을 할 때 어떤 스타일인지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사랑을 하면 모습이 변하는지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좋았던 여행지몰골에 가고 싶은 이유

어떤 춤을 추고 싶은지좋아하는 컬러 등의 내용으로 

천우희와 사전 인터뷰를 했다


그렇게 몇 차례 서면으로 주고받은 내용을 토대로 작가는 'Bit of Love'라는 짧은 시나리오를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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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여기에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동그란 눈이 뿜어내는 매력은 실제 "화장하지 않을 때 쓴다"는 안경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보통은 선글라스를 찾던데, 시력이 나쁜 것도 아니면서 안경을 쓰는 것이 재미있다

또 안경을 쓰고 가끔 코를 찡긋거리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실제 그녀는 이제껏 한번도 소개팅을 해본 경험이 없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반팅'을 한 적은 있어요. 아무 일도 없이 시시하게 끝났죠

실제 소개팅을 한다면 첫인사를 할 때나 작별할 때 매우 어색해서 어쩔 줄 모를 것 같아요

소개팅에는 주선자가 있잖아요

두 번째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그렇고, 잘 만나다 헤어지는 경우도 그렇고 난감해지긴 마찬가지일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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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라이카 필름 카메라와 동영상 카메라를 바꿔가며 촬영을 진행했다

조용히 그리고 순조로운 촬영 현장에서 피사체인 배우 천우희는 시종일관 웃고 있었다

카메라는 오랜만에 바람을 맞으며 놀이기구를 타는 그녀의 상기된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사랑에 빠졌을 때요? 책임감이 큰 편이에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만나면서 힘들고 지쳐도 참는 편이죠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잘 이어가려고는 하는데

이별 후 매달리거나 결심을 번복하는 경우는 없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평소보다 애교가 좀 느는 편이라는데, 저돌적이거나 이성을 잃은 적은 없다고


화목한 가족과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 자립하고 싶어 한 이야기나 

학창 시절 전교회장, 반장 등을 도맡아 한 경험담을 들어보면 책임감은 물론 씩씩하고 진취적인 성향도 엿보였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반 친구들에게 누가 제일 유명해질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을 때 

다수가 천우희를 지목한 일화도 얘기해주었다


유난을 떨며 남 앞에 나서거나 가만히 있어도 톡톡 튀는 캐릭터는 아니었기에 그 일은 내내 기억에 남아 있단다


그런데 지나간 20대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있어요

해본 것이 별로 없네?’라는 생각을 했죠

제 삶엔 충만한 느낌이 없어요

누군가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선뜻 다가가지 않았고요

겁이 많았고, 걱정도 많았고, 또 저보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다 시간이 휙 지나갔어요

결혼을 하면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 같아 미루고 싶어졌죠

지금은 혼자만의 삶을 즐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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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그녀가 버킷 리스트를 소셜 계정에 올린 것도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이다

운동하기, 다시 일기쓰기, 영어 공부, 몽골 여행, 운전해서 부산 다녀오기, 춤 배우기 등 모두에게 공개했으니 이제 실천만 남았다.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요

몽골에서 오로라를 보고, 말도 타고 사냥하는 모습도 구경하고 싶어요

중·고등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다니는데, 몽골 여행은 말리더라고요

체력이 약한 걸 잘 아니까견디지 못할 거라고.(웃음)”

 


집에서 독립한 지 3년 차

이제 막 운전면허까지 취득한 그녀는 2개월 전 소형 SUV를 사서 주행 연습을 해왔다

눈이 와서 운전하지 않은 날이 긴 터라

놀이동산에서 스튜디오까지 직접 운전해 오며 살짝 신난 눈치다.


부산까지 운전하는 것이 목표예요

일산, 하남까지는 가봤는데 부산은 장거리잖아요

누굴 태우자니 미숙한 실력 탓에 미안해서 선뜻 제안하진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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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개봉을 기다리면서 드라마와 영화 등 차기작 소식이 들려온다

그동안 그만 고르라는 주변의 핀잔도 들었지만, 쉽지 않다고


단역부터 해온 저는 경험을 쌓을수록, 배우로서 입지를 다질수록 뭐든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다른 이유로 여전히 쉽지 않네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커졌고, 여자 배우가 선택할 캐릭터도 다양하지 않고요.”


그녀의 말에서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또 한 번 나온다.


캐릭터를 분석하느라 고민하고, 또 연기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고민이 사라지진 않아요

저는 계속 생각하며 파는 스타일이에요

문제의 핵심을 건드릴 때까지.”


시간이 흘러 서른이 되면서 생각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을 뿐 

연기, 기회, 선택에 대한 고민 탓에 지난 시간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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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녀보다 앞서 활동해 온 김혜수, 엄정화 등의 선배와 종종 만나 듣는 조언도 주옥같다고


선배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 시간을 지나왔더라고요

지금 당장 고민하기보다 조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다도 체력 관리를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여전히 에너지 넘치는 선배들의 모습을 본받고 싶었어요

그래야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테니까요.” 


인터뷰가 끝난 후 그녀는 폴짝 뛰며 문 밖으로 나가면서 스태프에게 그날 촬영이 무척 재미있고 즐거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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